머리말

무궁화가 우리나라꽃〔國花〕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고조선때부터 우리민족과 함께 해왔고, 특히 일제때에 민족과 함께 고난을 겪은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 1부와 제 2부 및 특별문헌발굴문으로 구성하였다.

제 1부는, 각계인사들이 무궁화를 예찬 한글과 일제시대의 무궁화 수난사례를 증언하는 글로 이뤄졌다. 무궁화를 예찬한 글을 통해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과 고매함을 일깨우고 자하였으며, 수난 사례의 글을 통해서는 과거일제(日帝)가 우리나라를 유린할때에 나라 꽃 무궁화까지 혹독하게 말살하려한 실상을 알려 민족의 울분을 잊지않게 하고자하였다.

제 2부는, 많은 사람이 무궁화를 사랑하고 선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30년간 본인이 무궁화선양 및 무상보급활동을 하면서 쓴 글을 실었고, 신문, 잡지보도문을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끝으로, ‘특별문헌’은 1927년과 1928년에 걸쳐 발표된 ‘무궁화고(無窮花考)’ 라는 우호익(禹浩翊)교수의 논문을 현대문으로 윤문하여 자료로 실었다. 이 논문은 우호익교수가 일제의 무궁화말살정책에 저항하며 쓴 글이다. 특히, 국화(國花)로서의 무궁화를 논한 논문의 끝부분에서는 당시 일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용기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로인해 게재지(揭載紙)가 휴간당하였는가하면, 1년 후에 완결(完結), 발표시에도 일부가 삭제되는 등고초를 겪었다. 오늘날 우리모두 필독해야 할 글이라고 생각하고, 후세대에까지 우교수의 뜻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수록하였다. 이 사실을, 자녀가 이민을 가서 연락이 되지 않아 말씀을 못한 아쉬움이 있다.

2009년 10월

권지용(權智庸)






편찬 후기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땅의 소녀는 정신대(위안부)로 끌려가고, 청장년은 징병(군인)과 징용(강제 노역)으로 잡혀갔다. 그때 나는 가라후도(사할린)에 꼼짝없이 징 용으로 끌려갈 신세가 되었는데, 이를 피하고자 중국 베이징에 가서 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이징을 점령했던 일본군은 철군했다. 중국 공산당이 입성하자, 편저자 는 국적 없는 유랑민이 되어 고초를 겪었다.

1946년, 텐진(天津) 근처 탕구항에서 미군 난민선 에 몸을 싣고 황해를 건너 14일 만에 부산에 입항했 다. 이때 태극기를 본 감격은 절필난구(絶筆難句)였다. 동년(同年) 여름에 부모님을 뵙고자 미・소 군정의 경계인 국경아닌 국경선 38선을 넘어가다가 인민군에 체포되었는데. 도망쳐 구사일생으로 황해도 옹진 고향 집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농지는 이미 몰수되 고, 공산당원들이 붉은 깃발을 내세우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내무부 발간 무궁화 가꾸기

나라의 상징은 국기(태극기), 국가(애국가), 국화(무궁화)인데, 6・25 전쟁 때에 부산에서 환도했을 때 에 당시 문교부는 민족 정기를 내세우고자 각 학교에 국기(태극기) 게양을 지시하려 하였으나 해당 자료 가 없다고 하여, 이에 본인이 그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 공동 출제 제1회 때 출제 위 원으로 참여하였는데, 출제자로서 국기(태극기)와 국화(무궁화)를 시험 문안으로 제시한 바도 있다.

이상의 경위를 지닌 편저자는 1980년 당시 노태우 내무부 장관(제10대 대통령)이 전 국토 1000만 그 루 무궁화심기 범국민 운동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자 각 시, 군에 200만 원씩 지원하고 ‘무 궁화 사랑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을 벌일 때, 편저자는 과천에 무궁화 묘포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본인 은 9살 때, 면장이신 이모부가 일제의 지시에 따라 캐어 버려야 할 무궁화나무를 울 안에 숨겨 심는 것 을 본 생각을 하면서 가장 좋은 품종인 백단심(白丹心) 무궁화 묘목을 다량 증식하여 방방곡곡에 무상 보급하였다. 이어서 관련 무궁화 책자도 출간하여 UN과 OECD 등 세계 주요 국가에 보낼 계획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호익 교수 논문 ‘무궁화고(無窮花考)’와 남궁억 선생님의 일대기 ‘불굴의 얼’ 및 ‘무궁화 가 꾸기’(내무부 발간)를 읽고,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윤택중 선생, 독립기념관장 안춘생(안중근 의사 의 조카) 선생을 찾아가 지도 말씀과 옥고를 받았다.

이러한 여러분의 귀한 글을 받아 원고를 삼화출판사에 출간 의뢰하였는데, 원고 담당 부장이 실수로 버스에 놓고 내려 분실하였다. 그때, 편저자는 폐병의 오진으로 장기 투약 중이어서 출간을 미룰 수밖 에 없었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출간하게 되니, 옥고를 주신 여러분 중에 권영찬 선생님은 병환 이시고, 다른 분들은 고령으로 모두 유명을 달리하여 출간 기념회를 열 의의도 사라져 버려 편저자는 못내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편저자 권지용






'韓國나라꽃' 非賣品으로 出刊!!

대한민국의 상징 무궁화!

무궁화를 지켜내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냈습니다 한반도 곳곳마다 우리가 심은 나라꽃 무궁화는 단순한 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잊혀져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횃불이며 계몽운동이었습니다

2009. 12.
權 智 庸